김일성주석께서 1960년대 조국통일의 3대혁명력량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 조직령도


조국통일의 3대혁명력량인 공화국북반부의 사회주의력량과 남조선의 애국적민주력량, 국제혁명력량을 강화하는것은 제국주의의 우두머리인 미제와 직접 맞서고있는 우리 혁명과 조국통일위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투쟁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조국의 통일, 조선혁명의 전국적승리는 결국 3대력량의 준비에 달려있다고 말할수 있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주도적이며 결정적인 력량인 공화국북반부의 사회주의력량을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으시였다.

○ 주체50(1961)년 9월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하신 당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에서 사회주의의 전면적건설을 위한 강령적과업을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화국북반부혁명기지를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더욱 강화하기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혁명기지의 정치적력량을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관심을 넣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55(1966)년 10월 조선로동당대표자회와 주체56(1967)년 5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전원회의를 비롯한 여러 계기들에 당의유일사상에 기초한 당과 혁명대오의 사상의지적단합을 이룩하는데서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오도록 하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화국북반부의 경제적위력을 더욱 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공화국북반부에서는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이 세차게 일어나는가운데 7개년계획이 성과적으로 완수되고 1960년대말, 1970년대초에는 사회주의공업화의 력사적과업을 빛나게 수행하는 력사적사변이 일어났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우리의 군사적위력을 강화하는데 큰 힘을 넣으시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까리브해위기, 바크보만사건 등 사회주의나라들을 고립압살하기 위한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은 그 어느 때보다 광란적으로 벌어졌다. 더우기 미제는 일본군국주의자들과 남조선군사파쑈도당을 결탁시키려고 책동하면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준비에 광분하였다.

안팎의 정세는 미제의 격화되는 새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울것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조성된 엄중한 정세와 관련하여 주체51(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를 소집하시고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위적국방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정력적인 선군혁명령도의 나날을 끊임없이 이어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자위적군사로선과 《일당백》구호밑에 무적필승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된 우리 인민군대는 주체57(1968)년 1월 미제의 무장간첩선《푸에블로》호를 나포하고 그후 대형간첩비행기《EC-121》을 단호히 징벌해 버림으로써 우리 군사적위력을 만천하에 과시하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사회주의력량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더욱 강화해나가시는 한편 조국통일위업을 촉진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들을 련이어 제시하시여 평화통일공세를 련속 벌려나가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공화국정부와 정당, 사회단체들에서 북남교류와 협력, 북남련방제실시에 대한 우리 당의 평화통일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공세를 끊임없이 강화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화국정부로 하여금 주체52(1963)년 9월 남조선으로부터 미군을 철거시키는 조건에서 북과 남이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을데 대한 협상을 체결하고 북남의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이하로 축소할데 대해서와 나라의 초보적인 통일을 실현하는 조치로서 북남련방제를 실시할데 대하여 다시금 제의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서 공산당과 자산계급의 정당이 합작하여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투쟁한 력사적경험이 있고 주체37(1948)년 4월에 우리가 남조선의 김구선생을 비롯한 량심적인 민족주의자들과 한자리에 모여 구국대책을 세우고 공동으로 투쟁한 경험이 있는 조건에서 북의 공산주의자들과 남의 민족주의자들의 대표들이 조국통일의 길에서 서로 힘을 합치고 북남협상과 합작을 실현할데 대하여 호소하도록 하시였다.

공화국정부는 그해 11월에는 비망록《조선통일문제해결의 길》에서 나라의 초보적인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로서 북남련방제를 실시하고 이러한 중간걸음을 거쳐 북남간의 접촉과 호상 리해를 촉진시키고 민족적화목의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전조선자유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적인 중앙정부를 수립하고 나라의 완전한 통일을 이룩할데 대하여 또다시 제의하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북남간의 협조와 합작실현의 조건을 성숙시키는데서 당면하여 주체53(1964)년에 있게 되는 올림픽경기에 북남조선유일팀을 구성하여 출전하도록 하는데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시였다.

공화국올림픽위원회의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북남조선올림픽위원회 대표들의 회담이 주체52(1963)년 1월에는 로잔느에서, 그리고 5월에는 홍콩에서 열리였다.

우리측은 회담에서 유일팀호칭문제는 《조선유일선수단》또는《남북유일선수단》으로 하며 선수단이 부를 노래는 해방전부터 다같이 불러오던 민요 《아리랑》으로 할데 대하여 제안하고 유일팀의 구성과 훈련장소, 예선경기장소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안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남조선측은 유일팀호칭으로는 남조선의 《국호》만을 사용할것을 고집하다가 나중에는 《남조선만이 단독팀으로 출전할것》이라고 하면서 회의를 고의적으로 결렬시켰으며 지어 약정했던 제2의 홍콩회담에서는 애당초 참가하는것조차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유일팀구성은 성사되지 못하고 북남이 각각 독자적으로 올림픽경기에 참가하게 되였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혁명기지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반석같이 다져지고 우리 공화국정부의 련속적인 평화통일공세에 고무되여 남조선의 애국적민주력량이 더욱 장성강화되였다.

우리의 평화통일방안들은 남조선의 각계각층 대중속에서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을 절절히 바라며 군사파쑈도당의 《승공통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이 울려나오게 하였다.

남조선에서 언론의 자유가 무자비하게 탄압당하고있는속에서도 재야정치세력과 사회계인사들은 군사파쑈정권의 《실력배양》, 《선건설, 후통일》의 구호는 통일을 지연시키고 분렬을 고착시키는것이며 《통일론의의 자유보장》, 《건설과 통일의 병진》, 《북남사이의 인도적교류》, 《범국민통일기구의 구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반《정부》공세를 들이대였다.

한편 남조선의 선각자들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을 향도할 전위조직을 내오기 위한 활동을 적극 벌려나갔다.

지난날 남조선에서의 애국적민주력량이 잘 준비되여있지 못하였던탓에 주체49(1960)년 4월인민봉기때 통일의 좋은 기회를 놓치였고 군사정변과 같은 반혁명적공세를 막아내지 못하였으며 4월인민봉기에서 흘린 피의 대가를 미제의 다른 앞잡이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런 비극은 통일운동사에 남조선인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그들의 민족자주의식을 높여주며 실천투쟁속에서 지도핵심을 키우고 그들로써 혁명적전위조직을 결성하여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통일전선에 튼튼히 묶어세워야 한다는 피의 교훈을 남기였다.

남조선의 선각자들은 이로부터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을 향도할 전위조직을 내오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리였으며 주체58(1969)년 8월 25일 통일혁명당의 결성을 내외에 선포하였다.

통일혁명당은 창당선언에서 통일혁명당의 지도리념은 위대한 주체사상이라고 선포하고 당의 당면투쟁과업은 민족의 념원인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 있다고 명시하였다.

–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통일의 국제적지원력량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대외활동도 정력적으로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로 하여금 사회주의나라들뿐아니라 자주성을 지향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과의 정치, 경제, 문화적련계를 밀접히 하도록 하심으로써 우리 인민의 통일위업에 대한 국제적련대성을 강화하게 하시였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이르러 우리 나라는 30개의 아시아, 아프리카의 나라들과의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6개의 자본주의나라를 포함한 근 80여개의 나라들과 무역 및 통상 관계를 가지게 되였다.

자주성을 지향하는 나라들과의 단결을 강화하는데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54(1965)년 4월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아, 아프리카의 39개 나라 지도자들과 대표들의 참가밑에 열린 반둥회의 10돐 경축행사에 참석하시여 벌리신 대외활동은 거대한 의의를 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대외활동에 의하여 주체59(1970)년 한해만 하여도 제3차 쁠럭불가담국가수뇌자회의를 비롯하여 여러 국제회의와 국제기구들에서 조선의 평화적통일을 지지하는 200여건의 각종 련대성조치들이 취해졌다.

이러한 대세의 흐름속에서 여러 나라, 여러 지역들에서 조선인민의 조국통일을 지지하는 서명운동, 련대성집회 등이 광범히 벌어졌으며 세계 여러 나라 출판보도물들이 우리 당의 조국통일방침을 소개하는 글들을 실었다.

우리 인민의 조국통일위업에 대한 이러한 국제적련대성의 강화는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조성하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1960년대에 조국통일 3대혁명력량이 급격히 장성강화됨으로써 미제와 남조선군사파쑈도당의 《승공통일》야망을 저지파탄시키고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갈수 있는 위력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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