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헌선생에게 베푸신 숭고한 사랑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력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위인중의 위인이십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혁명의 길에서 뜻을 같이한 동지들을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시였으며 그들이 희생되였을 때에는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눈물도 많이 흘리군 하시였고 그들을 위해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그 숭고한 의리심은 준엄한 날에나 평화로운 날에나 한결같으시였다.
  주체40(1951)년 8월, 당시 정주에 자리잡고있던 김일성종합대학 개교식에 참가하기 위하여 깊은 밤에 대령강을 건느던 허헌선생이 불의에 달려든 적들의 야간폭격에 뜻밖에 희생되였을 때였다.
  허헌선생은 남조선에서 활동하다가 북반부로 들어온 후 주체37(1948)년 남북총선거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되고 그해 9월 공화국이 창건되면서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 되였으며 이밖에도 법제위원회 위원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단 성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의 중책을 지니고 사업하였다. 
  그리고 주체38(1949)년부터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였다.
  그가 희생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좀처럼 이 놀라운 소식을 믿을수가 없으시였다. 
  거듭 알아보시고 틀림이 없다는것을 확인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통한 심정을 금치 못하시며 그의 시신을 찾기 위한 긴급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무섭게 사품치는 강물속에서 이미 바다로 떠내려갔을지도 모르는 그의 시신을 찾는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지에 나가있는 일군들로부터 더는 허헌선생을 찾을 길이 없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바다가 아무리 넓다 한들 우리 당이 아끼고 사랑하던 허헌동지를 못찾는다는거야 말이 되는가,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야 한다, 바다밑을 다 뒤져서라도 꼭 찾아야 한다고 간곡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전선상황이 매우 어려운 속에서도 수많은 군인들과 많은 배들을 동원하도록 친히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해당 일군들에게 강에서만 찾지 말고 바다에서도 찾고 혹시 물에 밀려 북쪽으로 떠내려갔을수도 있으니 남쪽바다에서만 찾지 말고 북쪽바다에서도 기어이 찾으라고 당부하시였다.
  그리하여 허헌선생이 희생된지 16일만에 드디여 정주 북쪽 앞바다에서 그를 찾아내고야말았다.
  그날 허헌선생의 딸을 위로해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 정월에는 김책동무가 갔고 …이번에는 동무의 아버지가 가고 … 이렇게 내가 아끼고 믿던분들이…라고 끝내 말끝을 맺지 못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례식날 영구가 안치되여있는 모란봉지하극장에 친히 나오시였다.
  적들의 대규모적인 《하기공세》가 개시되여 전선상황이 매우 긴급한 때에 최고사령부를 잠시도 뜰수 없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나오신데 대하여 일군들이 송구한 마음으로 말씀올리였을 때 수령님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시며 아니라고, 아무리 어떻다 한들 허헌선생이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 내가 나오지 않을수 없다고, 나오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어서 나왔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맨앞에서 몸소 령구를 메시고 모란봉지하극장의 높은 계단을 오르시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께서 지니신 혁명적의리의 깊이는 그 무엇으로써도 잴수 없는 무한대한것이였으니 수령님께서는 사랑하는 전사와의 영원한 작별이 못내 애석하시여 그날 저녁 또다시 허헌선생의 묘를 찾으시였다.
  고인에 대한 추억과 애석함으로 가슴을 적시시며 오래도록 분묘를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윽고 일군들에게 새로 판 자리가 보이지 않게 잔디를 더 입혀야겠다고, 미제놈들이 어떤짓을 할지 모르니 잔디를 잘 입히라고 간곡히 당부하시며 또다시 눈굽을 찍으시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멀리도 흘렀다.
  하지만 먼저 떠나간 혁명전사를 생각하시는 우리 수령님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욱더 간절해만 갔다.
  어느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기념일을 앞두고는 공화국이 걸어온 지난날을 더듬으시다가 허헌선생을 추억하시면서 그의 혈육과 명절을 함께 쇠였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몸가까이 불러도 주시고 현지지도의 길에서 허헌선생의 자취가 어려있는 장소를 지나실 때면 가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허헌선생은 애국심이 강한 참으로 좋은분이였다고 감회깊이 추억하시며 그를 잃으신 애석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바로 이것이 혁명적의리를 최고의 높이에서 지니고계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태양같이 따사롭고 넓고넓은 사랑의 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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